고향 떠나는 광주 청년들 - 박진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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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떠나는 광주 청년들 - 박진표 경제부장
2025년 07월 02일(수) 00:00
1990년대 광주 충장로를 비롯한 도심 번화가는 젊음으로 넘쳐났다. 광주는 전남 22개 시·군에서 젊은 인재들이 몰려오는 ‘호남 교육의 중심지’였다. 2004년 광주 인구는 140만명을 돌파했으며 이 중 30%는 전남 출신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남 청년들이 광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호남권 기업과 공공기관에 진출하는 ‘전남→광주’ 인재 순환 구조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광주 20대 청년 중 34%가 전남 출신이던 그 시절, 광주는 전국을 대표하는 ‘청춘의 도시’이기도 했다.



탈광주에 무너진 인구 140만명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2025년 현재, 광주의 심장 박동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광주 인구는 139만 9880명으로 21년 만에 140만명 선이 무너졌다. 거리에는 청춘보다 고령자의 발걸음이 더 많아졌다.

올 1분기 광주를 떠난 인구는 494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20~30대 청년층이었다. 2000년대 초 5만명에 달했던 대학생 수는 3만 2000명대로 줄었다. 광주에 거주하는 전남 출신 청년 비율도 19%까지 하락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졸업생의 진로는 이 같은 청년 이탈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GIST 졸업생 중 64.1%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이 가운데 59%는 수도권이나 KAIST로 진로를 정했다. 광주에 남아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비율은 극소수다. 이유를 찾아볼 것도 없이 광주에는 GIST 졸업생을 받아줄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게 주 원인이다.

광주의 일자리 부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 5월 기준 광주 전체 고용률은 61.3%인데 청년 고용률은 38.9%로 전국 평균(46.5%)보다 크게 낮다. 그나마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되는 중견기업 비율은 0.4%에 불과하고 업종도 자동차·부품 산업에 한정돼 있다. 청년 임금 수준 역시 서울 대비 30%가량 낮은 게 현실이다.

광주 청년들 사이에서 “고향이 싫어서가 아니라 머물 이유가 없어서 떠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지역 내 일부 전문가들은 청년 이탈의 원인으로 ‘서울에 대한 동경’이나 ‘문화 인프라 부족’ 등을 지목했지만 정작 청년 당사자들은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도권 청년들까지도 “양질의 일자리만 있다면 지방 취업도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일자리의 질’은 청년 유출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채용시장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청년 구직자의 63.4%가 “좋은 일자리만 있다면 지방 취업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들이 지방 취업의 조건으로 꼽은 요소는 ‘높은 급여 수준’(78.9%), ‘양질의 복지제도’(57.1%), ‘워라밸 실현’(55.8%), ‘고용 안정’(42.5%), ‘직무 역량 개발 기회’(29.1%)였다.

청년 유출은 단순히 지방도시의 매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일자리의 질’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조사 결과다.

광주시도 나름대로 청년 유입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광주시의 ‘광주형 청년일자리 공제’는 2년간 500만원을 적립하면 시와 기업이 각각 250만원을 매칭해 총 10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연간 모집 인원이 겨우 300명에 불과하다. 이 300명 중에서도 서울행을 선택했다가 해당 제도 때문에 광주에 머물게 된 청년이 몇 명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지역 청년들은 이 같은 ‘단발성 혜택’보다는 청년이 장기적으로 정착하고 싶어질 수 있는 도시 구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쟁력 있는 일자리와 직무 기반 인재 육성 시스템 등이 마련된다면 굳이 광주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과 맞은 마지막 기회

그나마 이재명 정부의 출범 이후 광주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중심에는 ‘인공지능 중심도시 광주’라는 대통령의 공약이 있다.

광주시는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600개 이상의 AI 관련 기업과 스타트업이 들어섰고 AI 교육원 등을 통한 인재 양성도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 타운홀 미팅에서 광주의 인공지능 산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광주시와 지역 정치권이 하루빨리 풀고 바로잡아야 할 과제로 보인다.

광주가 청년을 끌어들일 또 하나의 호재는 2027년 개장을 앞둔 전국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몰 ‘더현대 광주’다. 청년이 중요시하는 소비와 문화, 여가의 중심지 역할이 기대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일자리와 여가·문화 인프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마지막 유인책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주거공간 제공이다.

광주의 한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광주로 이직한 수도권 청년 대부분이 지하철 역세권을 선호 거주지 조건으로 꼽는다. 서둘러 도시철도 2호선을 완공하고 역세권 주변에 청년층이 만족할 만한 주거지를 조성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도 좋은 대안일 것이다.

때마침 수도권 청년들조차 ‘좋은 일자리’만 있다면 지방에 머물 의향이 있다고 하니 1990년대 그때처럼 ‘청년이 찾아오는 도시 광주’의 재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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