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 유치 경쟁 - 박진표 경제부장
2025년 10월 30일(목) 00:20
‘명품(名品)’은 단순히 비싼 물건을 뜻하지 않는다. 기원은 라틴어 luxuria(사치·과잉)로 고대 로마 귀족들이 평민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금사로 수놓은 의복과 향료를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태생부터 ‘차별의 언어’였던 셈이다.

르네상스 시대 들어 장인정신이 예술과 결합하면서 명품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 가치’로 승화됐다.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은 19세기 귀족들의 여행용 트렁크 제작에서 출발했고, 샤넬은 코르셋을 벗긴 여성복 혁명으로 자유를 상징했다. 에르메스는 말안장의 가죽 기술로 정교함의 대명사가 되며 급성장했다.

이 세 브랜드의 앞글자를 딴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오늘날 명품 산업의 정점으로 통한다. 명품의 화려한 빛 뒤에는 구조적 불균형도 존재한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김승원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백화점 3사(롯데·현대·신세계)의 외국 고가 브랜드 실질 수수료율은 평균 15.0%였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잡화 브랜드 수수료율은 평균 23.9%로 무려 1.6배의 차이를 보였다. 백화점별 외국 명품 수수료율은 신세계 14.8%, 현대 15.0%, 롯데 15.3% 였고, 2024년 기준 백화점 3사 합산 외국 명품 매출은 9조1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9%를 차지했다. 국내 백화점들이 수입 명품에는 을(乙)이 되고, 국산 브랜드에는 갑(甲)이 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명품 불모지나 다름없던 광주 유통업계도 ‘더현대 광주’의 2028년 개장을 앞두고 총성 없는 명품 유치전이 한창이다. 광주에는 ‘에루샤’ 중 루이비통만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있는데, 에르메스와 샤넬 매장을 누가 유치하느냐에 따라 백화점의 위상은 물론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지역 유통업계에선 광주가 ‘에루샤’ 소비권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과도한 수수료율 인하나 과열 마케팅으로 인해 지출액이 지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경계한다. ‘에루샤’ 유치 경쟁이 이윤의 경쟁을 넘어 지역과의 상생, 문화적 기여 등을 고려한 ‘품격 있는 경쟁’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박진표 경제부장 luc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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