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K팝 퇴마’ 악귀 잡는 무당 걸그룹에 빠지다
OTT 리뷰 <1>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 배경 애니메이션 글로벌 열풍
넷플릭스 영화 소니 픽처스 제작
트와이스·테디·이병헌·안효섭 참여
공개 4일 만에 41개국 영화부문 1위
2025년 07월 02일(수) 20:20
민화 작호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 ‘더피’와 ‘서씨’
이제 콘텐츠의 주요 무대는 극장이나 TV가 아닌 OTT다. SNS를 뜨겁게 달군 화제작부터 시간이 지나 다시 주목받는 역주행 작품까지. ‘OTT 리뷰’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등 국내외 주요 OTT 플랫폼에서 상영 중인 영화·드라마·예능을 소개하며, 지금 가장 뜨거운 콘텐츠의 흐름을 짚어본다.

‘K팝 덕후’의 상상이 빚어낸 한국형 오컬트 판타지. 무대 위에서 빛나는 K팝 아이돌이 사실은 악귀로부터 팬들을 지키는 무당이었다면? 무대 밖에선 김밥과 라면을 먹고, 몸이 허하면 한의원에서 한약을 처방받는 모습. 낯익은 한국의 풍경이 기발한 상상력과 맞물리며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이 작품은 일본계 기업 소니 픽처스가 넷플릭스 미국 자본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무대와 이야기는 철저하게 한국적이다. 연출은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가 맡았고, K팝 프로듀서 테디가 이끄는 더블랙레이블이 OST 제작을 주도했다. 트와이스의 정연, 지효, 채영이 OST에 참여했고, 배우 이병헌과 안효섭이 영어 더빙으로 목소리를 더했다.

K팝을 소재로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 속 아이돌 ‘사자보이즈’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이야기의 중심에는 3인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있다. 탄탄한 보컬로 팀을 이끄는 리더 루미, 길쭉한 팔다리로 시선을 사로잡는 비주얼 메인댄서 미라, 귀여운 외모와 반전 실력이 빛나는 메인래퍼 조이까지. 이들은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K팝 스타지만, 사실은 퇴마사라는 비밀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온 악령 귀마는 헌트릭스에 맞서기 위해 저승사자들을 보이그룹으로 만들어 인간 세계로 보낸다. 그렇게 탄생한 5인조 ‘사자보이즈’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앞세워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고, 헌트릭스를 위협한다.

K팝을 소재로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 속 아이돌 ‘헌트릭스’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작품은 지난달 20일 공개 직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OTT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4일 만에 한국을 비롯해 미국·프랑스·독일·인도·이탈리아 등 41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OST도 인기를 끌며, 사자보이즈의 ‘Your Idol’과 헌트릭스의 ‘Golden’은 지난 2일 기준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 각각 77위, 81위로 진입했다. 한국과 아시아는 물론 영미권과 유럽권 시청자들까지 매료된 결과다.

기본 설정 자체는 낯설지 않다. 아이돌이 사실은 히어로였다는 설정은 기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이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핵심은 치밀할 정도로 철저한 한국화다. 매기 강 감독은 이민 전 한국에서 겪은 일상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섬세한 디테일을 구현해냈다.

헌트릭스를 처음 소개하는 장면은 무당을 연상케 한다. 악귀를 물리쳤던 무당의 현대적 모습이 바로 아이돌이라는 설정이다. 이들은 허리춤에 전통 장신구인 노리개를 차고, 조선의 주술적 도구 ‘사인검’, 가야의 ‘곡도’, 무당이 굿에서 사용하는 ‘신칼’ 등을 무기로 삼는다. 대대로 이어진 ‘선대 무당 아이돌’의 모습은 김시스터즈나 SES를 떠오르게 한다.

작품 속 마스코트인 전령 ‘더피(Derpy)’와 ‘서씨(Sussie)’는 민화 ‘작호도’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를 모티브로 했다.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마루에 앉아 밥을 먹는 모습, 찜질방에서 양머리 수건을 쓰고 피로를 푸는 장면, 패딩·가디건·반팔 티셔츠가 공존하는 거리 풍경까지. 억지스러운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진짜 한국 문화와 정서가 생생하게 녹아들어 있다.

한국 시청자들은 익숙한 풍경을 발견하며 반가워하고, 해외 K팝 팬들은 동경하던 아이돌 문화와 한국적 요소가 결합된 세계관에 매료된다. 전통 문화와 K팝, 무속과 오컬트,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며 새로운 한국형 판타지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넷플릭스 역시 흥행을 예측하지 못한 듯, 공개 이후에서야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제작진용으로만 만들었던 굿즈도 팬들의 요청으로 상품화했다.

이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인기의 본질은 외국인이 상상한 환상적 한국이 아니라 ‘한국인이 기억하는 한국’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이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글로벌 팬들은 이제 자연스러운 한국의 일상에 공감하고 반가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미국 토니상을 수상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도 맞닿아 있다. 꾸며진 한류가 아니라, 일상에서 피어난 자연스러운 한국적 콘텐츠가 글로벌 팬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K팝을 넘어 K푸드, K무속까지 확장된 세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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