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뱀딸기, 이름 붙인다는 것의 슬픔- 김향남 수필가
2025년 06월 30일(월) 00:00
산책길 옆 풀밭에 붉은 점들이 반짝인다. 한 알, 두 알. 마치 그림책 속 딸기처럼 동글고 탐스럽다. 그러나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누군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그건 뱀딸기야. 독이 있을지도 몰라.”

경고 같은 한마디에 금세 불안과 경계심이 스며든다. ‘뱀’이라는 말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그것은 더 이상 딸기가 아니다. 딸기 같은데 딸기가 아니며 먹을 수 있을 듯하면서도 먹어선 안 되는 것. 보기에는 예쁘지만 어딘지 위험해 보이는 것. 뱀딸기는 처음부터 어떤 낙인이 찍힌 채 우리의 경계선 밖에 놓여 있다.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판단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이름 붙여 구분하고 해석하며 기억한다. 이름은 언어의 외피이자 인식의 지도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사회적 맥락과 감정을 덧씌우는 일이다. 이름은 그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회피하며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뱀딸기’라는 이름에는 단순한 명명이 아닌 복잡한 문화적 정서가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뱀일까. 왜 뱀이라는 음울한 접두어를 붙여 놓았을까. 그것은 풀밭에 숨어 있는 뱀을 경계하라는 조상들의 지혜가 이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고의 의미로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뱀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불안과 혐오, 미지에 대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기호였기 때문일 것이다.

뱀은 오랜 세월 인류 문명에서 가장 이중적인 존재였다. 사랑과 증오, 경외와 혐오, 지혜와 기만을 동시에 의미했다. 인간은 자기 안의 모순된 감정을 외부 대상에 투사해 왔거니와 뱀은 그러한 투사의 대표적인 매개였다.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낮은 몸, 미끄럽고 축축한 감촉, 날름거리는 혀의 이물감. 뱀은 그 생김새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감각을 자극했고 무의식 깊은 곳의 본능을 일깨우며 감정의 파문을 일으켰다.

신화는 이 감정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인간을 유혹한 타락의 주체로 등장한다. 선악과를 따먹게 함으로써 인간은 지식의 눈을 떴지만 그와 동시에 낙원을 잃었다. 뱀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죄의 기원으로 표상되었다. 그 후로 수천 년, 뱀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고 인간은 그 선을 넘는 두려움을 ‘혐오’라는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그렇다고 뱀이 언제나 부정의 아이콘인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뱀을 시간의 순환, 탄생과 죽음의 무한 반복으로 여겼다. 꼬리를 입에 문 채 원을 이루고 있는 ‘우로보로스’는 끝없는 생성과 재생의 상징이었다. 인도에서는 ‘쿤달리니’라 불리는 잠재된 에너지가 뱀처럼 척추에 말려 잠들어 있다고 믿었고 이것이 깨어날 때 인간은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다고 보았다. 의술의 상징이 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도 뱀이 감겨 있다. 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이중언어이며 인간 심리의 역설을 비추는 상징적 거울이다.

뱀딸기는 그 거울의 일면이다. 딸기와 닮았으나 딸기가 아닌 것.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왠지 꺼려지는 것. 그것은 뱀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채 ‘이름’이라는 낙인 아래 타자화되었다. 이름은 인식을 지배한다. 이름은 사랑을 허락하고 동시에 금기를 선언한다. 이름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를 미리 정해버린다. 뱀딸기는 처음부터 ‘멀리해야 할 것’으로 호출된 서글픈 이름이다.

정작 뱀딸기에는 독성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아토피와 피부염증, 면역력과 항암 등에 주효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먹을 수는 있지만 밍밍하고 떫어 외면당할 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 붉은 열매를 보며 여전히 ‘뱀’의 그림자를 먼저 떠올린다. 이름에 속고 편견에 휘둘리고 있을 따름이다.

풀밭의 작은 열매들이 나를 본다. 초록 속 새뜻하게 붉은빛이 묘하게 도발적이다. 끌림과 망설임, 매혹과 불안감이 한순간에 교차한다. 누명을 쓴 뱀딸기가 뱀처럼 구부러진 산책로 풀밭에서 서늘하게 나를 응시한다. 그 시선은 어쩌면 내 안의 낯선 감정, 이질적인 충동,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아의 그림자를 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이름 붙여 멀리했던 것들, 애써 외면했던 모순된 본성을 뱀딸기는 붉은 눈으로 묻고 있는 듯하다.

조심조심 길을 따라 걷는다. 모처럼 스르륵! 뱀 한 마리 마주쳐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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